위 음악을 플레이 해놓고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I 포스트를 들어가면서
가드닝 식물의 적정 생육 pH를 찾을 수 없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습니다. 계획을 세웠고, 진행한 펀딩에 많은 분이 호응해 주면서 프로젝트는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궤도에 올라탔습니다.
일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비닐하우스를 임대하려던 애초의 계획은 원하는 사이즈의 매물이 없어서 포기해야 했습니다. 화훼 단지 쪽도 문을 두드려 봤지만 1년 임대료가 새로 짓는 것만큼이나 비쌌습니다.
비닐하우스를 짓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했고, 농지은행을 통해 노는 밭을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순탄치 않더군요. 대부분의 밭 주인은 시설하우스를 설치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사용 후 철거 또는 증여한다고 해도요.
그래서 폐교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비닐하우스를 지을 땅이 필요했고 전국 각지엔 활용처를 찾지 못한 폐교가 있었습니다. 폐교의 운동장은 대형 비닐하우스를 지을 만큼 넓었고요.
후보군은 '전국 어디든'이었습니다. 당장에 없다면 섬에 있는 폐교라도 가려고 했습니다. 각 지방 교육청의 공문을 수집해서 며칠 동안 전국의 폐교를 순회했습니다. 그중 임대 가격과 활용도 측면을 고려했을 때 가장 나은 곳이 지금의 폐교였습니다. 그러니 폐교는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프로개는 어느 시골 폐교의 성주가 되었습니다. 지박령(아내)이 흔쾌히 동의해주어서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폐교를 수선(수리) 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한 분 한 분 찾아다니며 인사드렸습니다. 먼저 찾아오시는 분도 계셨고요. 이런 시골은 골짜기마다 집이 있습니다. 모두 합치면 100여 가구가 조금 넘습니다.
많은 분들이 텃세를 걱정해 주시더군요. 아마도 그런 게 없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지도 모릅니다. 내가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면 되는 것 아닐까요.
떡을 맞춰서 한집한집 인사 다니는 것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내가 먼저 경계를 풀고 이곳에 녹아들면 마을 사람들은 더 많은 것으로 돌려줍니다. 트랙터나 굴삭기 같은 장비가 필요하다는 말에 먼저 소개해주시고, 장마가 오면 어디서 물이 터지고 어디를 대비해야 하는 지도 알려주셨어요. 고라니나 멧돼지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보답으로, 학교에 태양열 가로등을 설치하면서 필요한 이웃집에도 추가로 설치해드렸습니다. 이웃집에서는 또 고맙다며 고기를 사 주셨죠. 호의는 그렇게 호의로 돌아옵니다.
시골 마을은 소문이 금방 납니다. 오늘 아침 텃밭에 고추를 심으면, 분명 아무도 못 본 것 같은데 저녁이면 마을의 가장 끝집 할머니도 그 사실을 알고 계시죠.
간혹 텃밭의 야채를 거리낌 없이 따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시골이라 모두 대문을 열고 살며, 실제로 대문이 없는 집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골에 도둑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과수원에 쓰려고 닦아놓은 물탱크가 사라져서 속상했는데, 똑같은 것을 윗동네 누군가 들고 가더라며 툴툴거리시던 이웃 어른께 물은 적이 있습니다.
"신고 안 하셨어요?"
"신고는 무슨. 저 모자란 사람이 가져갔는데. 지난번에는 삽자루도 가져갔고. 요 앞 최 씨네에서는 리어카도 가져갔어."
어르신은 허허허 웃고는 마시더군요.
이곳에도 물건을 훔치는 사람은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가져온다거나 밭에서 작물을 마음대로 따가는 사람들 말이죠. 다만 이곳에 도둑이 없는 이유는 그러한 사람들을 도둑이라고 몰아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모자란 사람이라며 토닥여 주는 인심이 남아있기 때문이죠.
밖에서 보면 상식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둑이라고 몰아세우며 경찰에 신고한다면 마을에 좋지않은 소문만 날 뿐입니다. 밖에서 굴러들어온 것이 인심 야박하다면서요. 배달 앱을 켰을 때 단 하나의 가게도 검색되지 않는 이곳에는, 이곳만의 상식이 존재합니다.
사실 산과 나무, 하늘에 둘러싸인 곳에 있다보니 '그분이 또 가져가셨어요' 같은 짧은 하소연을 하고, 함께 허허허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저절로 생기는 것도 같습니다. 텃밭의 작물은 시간이 비워둔 공간을 또 금방 메워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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